[윤우정 칼럼] 왜 보수는 참패를 예상치 못했나…②바닥민심론과 샤이보수론

[윤우정 칼럼] 왜 보수는 참패를 예상치 못했나…②바닥민심론과 샤이보수론

  • 기자명 윤우정 객원논설위원
  • 입력 2020.04.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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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블릭 = 윤우정 객원논설위원]  바닥 민심은 ‘못살겠다, 갈아보자’? 선거 현장에서 이른바 ‘바닥 민심’이라는 말이 있다.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는 시중의 여론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가 실제로 행사장이나 시장 등 현장에서 유권자를 직접 만나면서 접하는 반응이다. 특히 선거 운동 초기에는 유권자들이 서먹서먹하게 반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호의적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또 힘내라고 격려를 해주는 경우가 늘면, 이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리고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면 지지도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수도권 지역의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바닥민심이 너무나 좋다며, 승리를 낙관한 경우가 많았다. 필자가 수도권 지역 모 후보와 동행해보니 현장 반응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시장이나 상가를 방문할 때면 상인들은 명함도 적극적으로 받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후보도 이렇게 반응이 좋은데 왜 여론조사지지도가 낮게 나오는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참담했다.

돌이켜보면 바닥민심을 가늠했던 주된 대상은 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었다. 상대적으로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계층이다. 그리고 작년 내내 여야의 정치적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진영간 결집이 조기에 이루어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자기 진영 후보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일 뿐 모든 시민들이 호의적으로 반응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닥민심은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 절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물론, 변화의 추이를 보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겠으나 특정 업종이나 계층의 반응을 전체적인 여론으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나 싶다.

샤이보수는 있었나?

여론조사에서 뒤지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은 ‘여론조사는 믿지 않는다’, ‘막상 개표를 해보면 샤이 보수가 다수 드러날 것이다’며 승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놓고 볼 때 샤이보수는 없었다. 혹자는 ‘차명진 막말’ 파문 등으로 샤이보수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선거 기간 중 내가 본 보수 지지자들 중 샤이한 사람은 드물었다. 보수 성향의 인사들은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미래통합당 후보에 대해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중도층이나 진보층이 샤이한 경우가 훨씬 많다. 이번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역구 였던 경기도 고양정(일산서구) 선거구 소재 한 아파트 카페 게시판을 보면 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게시물이 정부 비판과 미래통합당 후보에 대한 지지였다.

특히 장관이 살고 있는 지역인 만큼 기대가 컸으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열악한 대중교통도 개선될 여지가 안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야당 후보의 압승을 점쳤으나 막상 그 지역 투표함을 개봉해보니 여당 후보의 압승이었다. 아파트 게시판은 속된 말로 맨붕에 빠졌다.

‘세입자가 많은 탓이다‘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이처럼 샤이한 보수 보다는 말없이 여당을 찍는 샤이한 중도나 진보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선거 초기부터 정당 지지도를 바탕으로 후보 지지도가 됐다.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의 지지도가 소속 정당의 지지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미 진영 내 결집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극히 적었고, 이미 여론조사에 대부분 반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선거 결과는 여론조사와 정확히 일치했나, 물론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선거판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결정적인 변수가 있었다. 바로 투표율이었다.

사전투표와 선거 혁명

4월 15일 직전에 선거 결과를 예측하면서 판단하기 힘든 변수가 있었다. 이미 여론조사 결과 어느 정도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으나, 폭발적인 사전투표로 인해 투표율이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26.7%라는 사전투표율은 전체 투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전체 투표자수로 따지면 20대 총선에 비해 460만명 정도가 투표를 더 했던 것이다. 특히 육안으로 볼 때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높은 사전투표율은 특정 지역에 국한 것이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이었고, 하나의 흐름이었다.

일부에서는 정권 심판을 하러 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온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가 말해주 듯 사전 투표는 그동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수의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던 20~30대가 사전 투표에 대거 참여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정부 여당과 진보 정당에 표를 몰아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관외 사전투표가 늘었고, 관외 사전투표에서는 진보 성향이 확연이 드러났다.

결국 직장인들이 진보쪽으로 돌아섰다는 말이다. 결국 젊은 층이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엄청난 정치 혁명이며, 그것이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고 본다.

세상이 바뀐 줄을 정녕 우리만 모르고 있었나?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혹자는 이념지형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미 이념지형은 바뀐 지 오래됐다. 다만 투표를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세대별 투표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사전투표 등의 제도 개선 덕분에 젊은 층의 투표 참여가 크게 늘었고, 결국 이러한 이념지형이 투표결과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경기도 지역의 한 보좌관은 “세상이 변한 줄 우리만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집권 3년차에 치러진 정권 심판의 성격을 강하게 가진 선거였다.

코로나 사태 대응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선거 직전에 급상승하기는 했지만, 연초만 하더라도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는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야당에게는 이보다 더 나은 선거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차명진 등의 막말이나 프레임이 중도층에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미 수도권의 이념 지형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예를 들어 경기도 안성시는 도농복합지역으로 경기도에서도 손꼽히는 보수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지난 20대 총선에 비해 2만명 정도가 투표를 더 했고, 생소한 여당 후보가 당선됐다.

게다가 그 지역 총 9만 표 중 정당 투표에서 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정의당에 투표했으며, 4천 5백명이 열린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안성에 정의당 후보가 나오지도 않았고 정의당은 조국 사태, 비례대표 1번 파문을 거치면서 최악의 조건에서 이번 총선을 맞았는데도 말이다. 서울이나 외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참여하는 관외 사전투표에서는 여당은 야당 후보를 큰 차이로 앞섰다.

보수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막말 파문, 국회 파행, 공천 실패 등의 일시적 원인으로 선거 패패의 원인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념 지형 등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또는 보수 정당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냉전적 사고에 바탕을 둔 안보 논리가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수의 역할, 야당의 역할은 줄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대응에 있어서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 평가 받는 것도 언론과 야당의 감시와 역할도 적지 않다고 본다.

국정 운영의 한 축도 야당이며, 국가의 미래에 있어 야당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보수 그리고 야당이 무너지는 것은 대한민국의 큰 손실이다. 더 이상 추락을 막으려면 이제 보수는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희망사항이 아니라 제대로 민심을 해석하고 달라진 시대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튜브에 나오는 수많은 ‘OO론’들은 이제 결별해야 한다. 과학적인 분석만이 야당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윤우정 객원논설위원 webmaster@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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