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호 칼럼]박원순은 살아있다.

[김의호 칼럼]박원순은 살아있다.

  • 기자명 김의호 더퍼블릭 논설위원
  • 입력 2021.01.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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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호 더퍼블릭 논설위원

[더퍼블릭 = 김의호 더퍼블릭 논설위원] 알파치노가 뉴욕시장으로 분한 ‘시티홀’(1996)은 막후에서 세력가들 간의 담합과 거래로 유지되는 현실을 고발한 정치영화다.

한 마약 딜러가 거리에서 형사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죽는다. 할렘의 흔한 뒷골목 사고로 넘길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근처에서 유탄을 맞은 흑인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문제였다. 동정론이 일면서 예기치 않게 전국적 사건으로 비화된다.

죽은 마약 딜러가 중죄인이었음에도 수감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경위에 여론의 의혹이 고조된다. 그는 마피아 보스의 조카였다. 용기 있는 여 기자와 시장 보좌관의 끈질긴 추적으로 지역 정관계 실력자들이 그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하나 둘 드러난다.

당연히 시장도 여기서 빠지지 않았다. 지역을 움직이는 권력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나려는 순간 결정적 증언을 예고한 자들이 하나같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친(親)서민 시장으로 쌓은 인기를 발판으로 대권을 노리던 시장은 자신에게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보좌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치를 하려면 끈끈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맨슈카이트(menschkeit)’가 있어야 한다고.

‘맨슈카이트’로 포장된 부정한 권력 카르텔의 담합이 결과적으로 무고한 흑인 아이를 죽게 했고, 더 많은 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을 것이라는 일말의 가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영화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지방의원에 도전하는 보좌관의 모습을 비추면서 막을 내린다.

박원순 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이 던진 충격은 장본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진정되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뜨겁게 내연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현재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사건의 성격이 개인 일탈의 범주를 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영화 ‘시티홀’이 던지는 메시지를 한국적으로 변주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은 표현이 될 것 같다.

박원순 시장이 누군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론, 위안부 문제의 국제공론화 주도, 무엇보다 국내에서 직장내 성희롱사건 승소를 이끈 첫 변호사였다. 시정에서도 성인지감수성을 강조해 젠더특보를 신설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첫 번째 패미니스트 시장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여비서를 오랜 기간 성추행해 왔다고 한다. 고소를 당하자 피해 여성에게 한 줄의 사과도 없이 ‘모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택했다. 그의 찬란했던 여성인권활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라는 근본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장 비서실은 여비서의 거듭되는 피해 호소를 외면하고 도움 요청을 묵살했다고 한다. 심지어 입막음 용(用)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파렴치한 행위까지 피해여성에게 자행되었다.

기댈 곳 없는 여성에게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어야 할 시민단체는 어떠했는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신고를 받자마자 한국여성단체연합에 알렸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당 3선 의원 남인순에게, 남의원은 서울시 젠더특보를 통해 박 시장에게 알렸다.

이 과정에서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한 줄 성명도, 기자회견도, 고발도, 어떠한 액션도 없었다. 그저 가해자를 향한 신속한 보고만이 있었을 뿐. 나아가 남의원은 피해여성을 ‘피해 호소인’으로 규정하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남인순 의원은 8년 전 국회에서 ‘성폭력피해자인권보호법’을 대표 발의했던 자다.

서울중앙지검장은 피해여성의 고소 사실을 청와대에 알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 할 가해자의 휴대폰 포렌식 작업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서울지방경찰청은 박 시장이 사망한 지 5개월 만에, 박원순 성추행‧ 관계자 성추행 방조혐의를 모두 불기소로 송치한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박원순은 떠났지만 ‘멘슈카이트’ 정신으로 무장한 채 그를 두둔하고 비호했던 광범한 기득권 카르텔이 그대로 온존하는 한 박원순은 떠난 것이 아니다. 국민이 감당하게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 비용 571억원. 보궐선거가 정상을 되찾는 전기가 되었으면 그 돈이 덜 아깝겠다.

오래전에 본 영화 ‘시티홀’을 반추하게 된다.

더퍼블릭 / 김의호 더퍼블릭 논설위원 webmaster@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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